2025 회고록
음악과 향기처럼 감각은 당시의 기억과 마음을 그대로 되살린다. 그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.올해는 어떤 시간들이었을까. 가장 기억에 남았던 답변연말이면 늘 올해는 한 게 없는 것 같아서 허무해지지만 지금 이 시간에서 조금만 멀어지고 나면 '그땐 몰랐는데 잘 살고 있었네. 충분했구나.' 하고 곱씹게 된다.늦지 않게 스스로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도록 기억에 남는 시간들을 정리해두고 싶다. 1월올해 가장 슬펐던 순간가족과의 이별. 마지막 숨을 지켜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과 상실감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했다. 생을 달리하는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일은 휘몰아치는 파도에 잠식되지 않도록 조금씩 흘려보내는 과정이라고 느껴졌다.초현실적인 표현은 견디기 힘든 현실의 무게를 덜어주는 것 같다. 2월올해 가장 벅차올랐던 순간이런 세계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... 이 충격이 무뎌질까 봐 일부러 아껴서 본 것 같다. 당시 아이패드 클래스 커리큘럼을 기획 중이었는데 이 그림 연습 덕분에 굳어 있던 손이 다시 풀렸다.한순간에 몰입하게 만드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.수많은 레이어와 과정 3월평소에는 보색 대비가 강한 그림을 잘 그리지 않지만 레퍼런스가 마음에 들었다.하얀 얼음 덩어리 위로 검붉은 색이 옅게 번져나가는 질감, 얼어서 건조해진 피부 결을 표현하는 과정이 특히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. 그림에서 느껴지는 질감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 있는 것 같다. 4월올해 가장 귀여운 그림아이패드 드로잉이 재밌는 건 살아 숨쉬듯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이 가능하다는 거다. 고민하며 그리는 것보다 재밌겠다고 이끌려서 시작된 습작들은 보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다. 5월올해 가장 묘사가 많았던 그림얼굴도 재밌었지만 그보다 비즈 표현이 더 재밌었다. 언제 다 그리지 싶다가도 이런 복잡한 묘사들이 오히려 머릿속을 텅 비게 해줘서 어떨 땐 복잡할수록 더 좋다.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9월복잡한 문제에는 가장 단순한 해답이 있다.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를 만큼 엉켜 있던 것들은 억지로 풀어내려 하기보다 그 자체로 잠시 내려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. 10월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과 그와 정반대인 색을 모두 표현해 봤다.색뿐 아니라 명도와 채도까지 반대인 것을 그려본 건 처음인데, 무의식적으로 나다운 것과 나답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있었고 그 과정이 생각보다 새로웠다. 내가 무엇을 왜 좋아하는지도 더 명확해졌다.이 이야기는 언젠가 조금 더 자세히 풀어보고 싶다. 11월꽤 긴 시간 나를 압박해 온 트라우마를 직면했다.시야를 가리고 있던 장벽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해방감을 느꼈다. 12월올해의 마지막 아이패드 드로잉겨울 밤 반짝이는 조명처럼 피부 결에 따라 다양한 색들을 쌓아가며 올해 그렸던 수많은 그림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. 돌아보면 선명한 장면도 있지만 일기장에 종종 쓰지 않고 넘어간 텅 빈 여백들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시간도 있다. 그 모든 순간이 함께 존재해야 이야기가 완성된다.모든 시간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.